들녘소리

초겨울

곽요한 2012. 3. 25. 07:22

초겨울

 

-곽요한

 

 

깊이 감추었던 기억 몇 개 꺼내 조각 볕 아래 늘어놓고 퍼즐놀이를 하자니 빛바랜 것, 구겨진 것, 찢어지고 삭아서 너덜너덜한 것들이 제 멋대로 흩어진다 허둥지둥 맞춰보지만 여전히 서툰 법칙들로 하루해 짧고 나목 사이로 걸어가는 젊은 사내의 그림자를 좇아가는데 관절 삐걱거리는 소리만 요란하다 

 

조각들이 구르는 초겨울 거리, 마지막 조각을 맞추려 서두는 사람들 사이로 계절 다 보내고도 퍼즐을 끝내지 못한 사람 하나 슬며시 끼어들면 먼 데서부터 종소리 들려온다 메리 크리스마스! 예수 없는 예수의 생일 파티가 준비 되고 사람들이 파티용 가면을 꺼낸다 주름진 사내도 쑥스럽게 종이가면을 뒤집어쓴다 

 

해마다 그의 겨울은 가면으로 시작되었고 파티가 끝난 자리에는 세월의 오물이 질퍽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