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편지
길을 걸으며
곽요한
2012. 6. 14. 15:03
꽃이 피는 곳마다 길이 납니다.
길을 따라 들꽃을 만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집니다.
황량했던 무덤가에도
털중나리를 향한 길이 생겼습니다.
처음 길을 냈던 사람의 자취를 따라 발길은 이어지고
길 잃을 염려는 사라졌습니다.
[털중나리]
물속에도 길이 있습니다.
허리춤까지 차오르는 물속으로
용감하게 들어갔던 사람을 따라 길이 나고
그 길을 따라가 기꺼이 남개연 앞에 섭니다.
[남개연(왜개연)]
국수나무는 애당초 길가에 자리 잡았습니다.
길눈 어두운 사람들을 위한 배려였을까요?
[국수나무]
다래의 앞에는 오래된 길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점점 묻어나는 길입니다.
가끔 그 길을 걸으며 추억에 젖기도 합니다.
[다래]
박쥐나무 앞으로도 요즘 새 길이 났습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그 길은 탄탄해지고
찾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박쥐나무]
나비에게도 길이 있습니다.
같은 자리를 계속 찾아오는 걸 보면 알 수 있지요.
[흰줄표범나비]
나는 쉼없이 길을 걷지만
길을 잃기도 합니다.
익숙했던 길에서도 허둥대는 것이
나이 탓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낯선 길을 택합니다.
처음, 들꽃에게로 길을 냈던 사람처럼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내기로 합니다.
그 길의 끝에서 만날 모든 것을
사랑하기로 약속하며...
-솔빛에서 곽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