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장마입니다.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기 전
서둘러 들꽃을 찾아나섰습니다.
이른 아침,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전날 내린 비에 흠뻑 젖어
푸른 빛이 농염한 계곡의 이끼입니다.
그 모습을 담고 있자니
풍경을 담지 않은 지 꽤 오래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nd필터도 없이 100mm 매크로렌즈로 담은 사진이라
결코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푸른 이끼와 세찬 계곡의 물살이 어우러져
나름 멋진 풍경을 만들어 냈습니다.
장마철이라지만 간혹 구름사이로 햇살이 나타납니다.
잠시 열린 하늘빛을 배경 삼아 박주가리를 담아봅니다.
하늘 향해 덩굴을 뻗어 올린 박주가리와
푸른 하늘빛이 제법 잘 어울립니다.
[박주가리]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번에는 쥐방울 덩굴에 한 줄기 햇살이 내려앉았습니다.
금방이라도 나팔 소리가 들려올 것 같은
앙증맞은 꽃의 모습이 멋스러운 녀석입니다.
[쥐방울덩굴]
햇살이 비치면 나비들도 바빠집니다.
빗물에 젖었던 날개도 말려야 하고
굶주렸던 배도 채워야 하니까요.
[은줄표범나비]
언젠가 여름꽃이 봄꽃에 비해 화려하다 했던가요?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꼬리조팝나무에 꽃이 흐드러졌습니다.
속되지 않은 화려함이랄까요?
우리 들꽃의 특징입니다.
[꼬리조팝나무]
높은 산마루에도 들꽃의 향기가 있습니다.
몇몇 특정지역에서만 자생하는 솔나리가
그 분홍빛 미소로 유혹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솔나리를 보고 싶어 열병을 앓게 될 것이고
솔나리는 찾아 오는 사람들 때문에 시달림을 겪게 될 것입니다.
인간사가 본래 그러한 것을 어쩌겠습니까?
[솔나리]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어야겠지요.
그래서 균형이 이루어집니다.
얻는 것 없이 잃기만 하거나
버리는 것 없이 얻기만 하는 것 모두 문제입니다.
들꽃의 세계가 그러합니다.
자연 그대로 두면 저들은 스스로 균형을 이루어가지만
욕심덩어리인 사람이 개입하면
그 균형은 즉시 깨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들꽃을 만나러 갈 때에는
가급적 그들의 세계를 간섭하지 말아야 합니다.
발자국을 남기는 것조차 조심스럽게
미안한 마음으로 들꽃 앞에 서야 합니다.
-솔빛에서 곽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