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편지

괭이눈의 봄이야기

곽요한 2014. 3. 17. 10:10

얼마 전, 얼레지가 피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계곡으로 얼레지를 찾아갔습니다.

꽤 많은 얼레지가 피는 곳이었으므로

틀림없이 한 두 개체는 볼 수 있겠다 싶었지만

아쉽게도 막 꽃봉오리를 올리고 있는 녀석만 한 개체 발견했습니다.

대신, 얼레지보호지역이라는 팻말과 함께

무수히 잘려나간 숲의 잔해들이 있었지요.

그렇게 나무들을 잘라버린 이유가 얼레지를 위한 것일까요?

뭔가 사람들의 돈벌이를 위한 과정으로만 보입니다.

얼레지와 함께 꽤 많은 노루귀가 서식하는 곳이었는데

서식지가 파헤쳐진 탓에 몇 개체의 노루귀 외에는 볼 수 없었습니다.

 

[노루귀]

 

그러나 계곡 물가에는 애기괭이눈이 변함없이 피어 있었습니다.

시선을 낮추어 애기괭이눈과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그가 들려주는 지난 겨울이야기와

숲을 파헤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조금은 쓸쓸하게 들렸습니다.

 

[애기괭이눈]

 

흰(털)괭이눈도 개화를 시작했더군요.

이 친구가 피어나던 좋은 자리가 있었는데

그곳도 벌목 작업 때문에 훼손되어 아쉬웠습니다.

그나마 괭이눈들의 끈질긴 생명력이

어수선한 환경 속에서도 꽃피워냈음을 다행으로 여깁니다.

 

[흰괭이눈]

 

좀 더 윗쪽으로 올라가니 벌목의 잔해가 줄어들고

물가에 핀 애기괭이눈의 앙증맞은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계곡물과  애기괭이눈들이 재잘거리고 있었지요.

소풍 나온 어린아이들처럼 말입니다.

 

[애기괭이눈]

 

무리지어 핀 애기괭이눈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수런거리는 봄이야기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군요.

 

[애기괭이눈]

 

이곳에는 너도바람꽃도 많이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 먼저 만났으므로

큰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끝물이지만 아직도 많이 핀 모습을 보니

내년부터는 이곳에서 너도바람꽃을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 더 일찍 왔다면

눈속의 너도바람꽃도 볼 수 있었겠지요.

 

[너도바람꽃]

 

그 옆에서 현호색을 만났습니다.

노루귀가 다양한 색으로 핀다지만

현호색 또한 그에 못지 않습니다.

오히려 색상의 다양함에서는 노루귀를 능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현호색]

 

꽃송이 하나에도 여러가지 색을 포함하는 것이

현호색의 특징이기도 하지요.

색상이 참 고혹하다는 느낌이 들어 담아본 녀석입니다.

 

[현호색]

 

청색과 보라색이 어울린 모습이 아름답지요?

현호색의 꽃빛을 들여다보노라면

그 신비로움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됩니다.

 

[현호색]

계곡을 따라 오르내렸던 몇 시간의 데이트가 끝나고

들꽃이 사람들의 돈벌이가 돼 버린 참혹한 현장을 다시 돌아보니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가만 두었으면 참 아름다웠을 들꽃 서식지가 점점 황폐화 되고

머지 않은 날에 야생이 아닌

식생의 봄꽃들이 자리 잡을 거라는 예감입니다.

 

사람이 재난입니다.

들꽃에게는...

 

 

-솔빛에서 곽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