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편지

빗속에서 나눈 들꽃이야기 (1)

곽요한 2015. 4. 5. 23:43

 전날부터 내리던 비는 새벽에 그쳤지만 하늘은 금방이라도 다시 비를 내릴 듯하고

오후에 비가 내린다는 예보까지 있어 들꽃을 찾아나서기가 망설여졌습니다.

하지만, 주말을 이용할 수밖에 없으니 이대로 휴일을 보낼 수 없는 일이었지요.

고민 끝에 주섬주섬 챙겨들고 가까운 산을 찾았는데

비옷까지 챙겼으니 어지간한 비는 견딜 수 있을 터입니다.

얼마 오르지 않아서 알록제비꽃을 만났습니다.

본래는 등산로 초입에 꽤 있던 친구인데

등산로를 정비한다고 파헤치는 바람에 지금은 개체 수가 많이 줄었습니다.

알록제비꽃이지만 잎에 무늬가 없는 변이종이어서

예전에는 자주알록제비꽃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지금은 알록제비꽃으로 통합되었지요.

 

[알록제비꽃]

 

얼마 가지 않아 까마귀밥나무를 만났는데

꽃은 꽤 많이 피었지만 꽃 상태가 완전한 개체를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어렵사리 몇 컷의 사진을 담으며

변함없이 꽃을 피워내는 모습에 감사의 인사를 건넸습니다.

 

[까마귀밥나무]

 

근처에서 길마가지나무의 꽃이 아직 남아 있음을 보았습니다.

2주 전에 남쪽 지방에서 보았지만 가까운 산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즐겁기만 합니다.

 

[길마가지나무] 

 

연복초도 많이 보였습니다.

전후좌우, 그리고 위에 다섯 송이의 꽃을

가는 꽃대 하나에 달고 있는 기이한 모습의 식물이지요.

복수초에 이어서 핀다고 연복초라 불렸다는데

작명했던 분들의 고심을 알 수 있겠습니다.

 

[연복초]

 

급기야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부랴부랴 비옷을 꺼내 입고

카메라에 빗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신경쓰며 탐사를 계속했습니다.

흰괭이눈이며 큰개별꽃 등이 지천이었지만

내가 찾는 친구는 큰괭이밥이었으므로 눈인사만 건네고 길을 재촉했습니다.

매화말발도리도 꽃봉오리를 부풀리고 있으니

이상기온의 영향이 얼마나 큰 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러다가 잔털제비꽃을 만났습니다.

잎은 둥근털제비꽃과 비슷하지만 꽃잎이 순백색입니다.

그 순백의 꽃빛이 좋아 봄이면 잊지 않고 찾아보는 친구이기도 하지요.

 

[잔털제비꽃]

 

큰괭이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봉오리 상태였습니다.

이 계곡에도 꽤 많은 개체가 있었는데

계곡을 정비한다고 손대는 바람에 대부분 사라졌으므로

산을 넘어 다른 계곡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길을 재촉하다가 해마다 만나는 단풍잎제비꽃을 찾았습니다.

이 녀석도 아직 봉오리 상태였습니다.

한 송이는 핀 흔적이 보이는데 그마저도 비 때문에 꽃잎을 닫고 있었지요.

그래도 여전히 제 자리에서 잘 살아가고 있음이 대견해서

한 컷 담아주었습니다.

 

[단풍잎제비꽃]

 

그리고 만난 개별꽃.

계곡 아래에는 큰개별꽃이 있는데

개별꽃은 좀 더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산에서만 그런 것인지

본래 개별꽃이 큰개별꽃보다 높은 곳에서 자라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빗속에서도 우리의 만남은 각별했지요.

활짝 펼치지 않은 상태였지만

빗속에서 찾아온 나를 위해 저 만큼이라도 열어주었다고 믿고 싶었습니다.

 

[개별꽃]

 

개별꽃과 그렇게 정을 나누고 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앵초가 꽃 한 송이를 피워 내고 있었습니다.

계곡을 올라오면서 꽃봉오리가 올라오는 상태를 확인했지만

더 윗쪽에 꽃을 피워낸 녀석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1주일만 지나면 앵초의 군락이 계곡을 환하게 밝힐 듯하더군요.

 

[앵초]

 

앵초를 만나고서는 곧 산을 넘기로 작정했는데

노루귀 군락지에 혹시 남은 친구들이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이 산에서는 앵초가 필 때까지 노루귀 늦둥이들이 보였기 때문에

틀림없이 남은 녀석이 있으리라 여겼지요.

아니나 다를까!

노루귀 대표가 다소곳이 인사차 나와 있었습니다.

인사를 나누었으니 한 컷 담아 주어야지요.

결국 강원도에서 만난 노루귀가 마지막 노루귀가 아닌 셈이 되었습니다.

 

[노루귀]

노루귀와의 만남을 마지막으로 그 계곡에서의 탐사는 끝났습니다.

이제 능선을 넘어 다른 계곡으로 내려가면서 탐사를 해야 합니다.

나의 가슴은 다시 어떤 기대감으로 가득 찼습니다.

 

 

-곽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