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항재의 봄이야기
세상 참 좋아졌습니다.
해발 1000m가 넘는 산능선까지 도로가 뚫리며
사람들은 쉽게 높은 산에 오르고
그곳에 피어나는 온갖 들꽃을 만납니다.
그러나 길한 일에는 흉도 따르기 마련이어서
사람들이 많이 찾다보니 들꽃에게는 해가 됩니다.
어쩌겠습니까?
발걸음 하나라도 조심스럽게 움직일 수밖에요.
화창한 봄날, 만항재에는 나들이 나온 사람들과
들꽃을 찾아 온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그 틈을 벗어나 조금 한적한 곳으로 들꽃을 찾아나섰는데
발길 닿는 곳마다 눈길 머무는 곳마다 들꽃이 지천입니다.
가장 먼저 인사를 나눈 친구는 홀아비바람꽃입니다.
꽃대 하나에 한 송이의 꽃을 피우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두 송이의 꽃을 피우는 쌍둥이바람꽃과 구분지으려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름이야 어쨋든 그 순백의 꽃빛은
봄날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줍니다.
[홀아비바람꽃]
나도양지꽃의 노란 꽃빛도
지나칠 수 없도록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잎 모양이 양지꽃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고
꽃도 달라서 쉽게 구별할 수 있는 친구지요.
[나도양지꽃]
그런가하면 높은 산에서만 볼 수 있는 나도옥잠화도 막 개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꽤 많은 개체가 있는 곳이지만
한 개체만 꽃을 피워냈더군요.
잎에 비해 작은 꽃이 참 청초하기도 합니다.
[나도옥잠화]
흰색의 얼레지도 한 송이 만났습니다.
이미 시기가 늦어 꽃잎 끝이 누렇게 변하기 시작했지만
그 희귀한 모습은 사람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얼레지]
강원도의 높은 산에 서식하는 갈퀴현호색은
벌써 끝물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갈라진 꽃받침이 꽃부리 옆으로 삐죽하게 나온 모습이
갈퀴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인데 과연 그런가요?
[갈퀴현호색]
서울족도리풀은 한창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꽃 안쪽의 흰색 테두리로 구별하는 친구지요.
대체적으로 서울 인근에 많아서 서울족도리풀이라 불리게 되었는데
이곳에도 꽤 많은 개체가 서식하고 있습니다.
[서울족도리풀]
높은 산에서만 볼 수 있는 뫼제비꽃도 지나칠 수 없는 친구입니다.
잎이나 꽃빛이 낚시제비꽃 비슷하지만
줄기가 없어서 구별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참 예쁘지요?
[뫼제비꽃]
그리고 끝물의 한계령풀을 만났습니다.
올해는 만나지 않아도 괜찮다 여겼는데
기다려 줬다는 듯 한 개체가 꽃잎을 닫지 않고 있었습니다.
해가 넘어가는 시각이었는데 말이지요.
참 고마운 친구였습니다.
[한계령풀]
아직 봄이 한창인 만항재에서
해가 기우는 것도 잊은 채 들꽃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돌아가야할 길이 멀었으므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아쉽게 돌려야 했습니다.
아마도 며칠은 천상의 화원을 거니는 꿈을 꾸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은 늘 거기 머물고 있으므로...
-곽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