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라도 말이지요.
게다가 비까지 추적거리니 여간 낭패가 아니었습니다만
기어코 능선을 넘어 반대편 계곡으로 내려갔습니다.
등산로는 물론 없는 곳이며
나물을 채취하는 이들만 간혹 지나다니는 계곡입니다.
얼마쯤 내려 갔을까요?
산을 오르는 길에 만났던 잔털제비꽃이 군락을 이루며 피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를 더 내려가자 노랑제비꽃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개체 수가 몇 되지 않았는데
가까운 곳에서 뭔가를 캐낸 흔적이 커다랗게 보였습니다.
아! 이곳에도 이젠 사람의 발길이 닿기 시작했습니다.
그 피해가 고스란히 노랑제비꽃에게 입혀진 셈이지요.
부디 잘 살아가기를 기원할 따름입니다.
[노랑제비꽃]
씁쓸한 마음으로 다시 계곡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만난 태백제비꽃!
민둥뫼제비꽃과 비슷하지만 꽃이 더 크고(같은 서식환경에서)
잎이 쭈글쭈글한데 가장자리는 물결모양을 이룹니다.
그런 특징들만 보아도 태백제비꽃은 어려지 않게 구별할 수 있지요.
[태백제비꽃]
그리고 오늘 탐사의 가장 중요한 목표였던
큰괭이밥 군락지를 찾았습니다.
날씨 때문에 꽃잎이 대부분 닫혀 있고
개화가 오래 된 친구들이 잎을 열고 있었지만
비에 젖어 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상태를 확인했으니 만족해야지요.
날씨 좋은 날에 다시 찾아와 좀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면 될 일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도 참 재미있으니까요.
[큰괭이밥]
군락지를 벗어나도 계곡을 따라 큰괭이밥은 여기저기 보였습니다.
그러다가 작은 폭포 아래 핀 흰괭이눈을 보고
폭포를 배경으로 한 컷 담아보았습니다.(흰털괭이눈이라고도 합니다)
[흰괭이눈]
그리고 현호색도 한 컷!
비 때문에 계곡물이 불어 소위 말하는 계곡버전을 담아보았지요.
나도 가끔은 이렇게 사진작가 흉내를 내 보고 있습니다.
용서하시길...
[현호색]
그렇게 계곡을 따라 내려오며 많은 들꽃들과 눈맞춤하다보니
어느덧 아래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흙벼랑에 무더기로 핀 알록제비꽃을 보았습니다.
이 변이종 알록제비꽃은 혹시 서울제비꽃과 알록제비꽃의
교잡종은 아닌지 연구해 볼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난 김에 연구해 볼까요?
[알록제비꽃]
계곡이라 부를만한 지역을 다 벗어나니
봄맞이 나온 봄맞이가 방긋 인사를 건네왔습니다.
전혀 생각지 않던 친구의 인사라 더욱 반가웠습니다.
문득 그대의 전화를 받으면 기뻤던 일처럼 말입니다.
[봄맞이]
길가에 핀 꽃마리와도 정겹게 봄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저 작은 친구에게는 참 많은 매력이 숨어있습니다.
그대도 올 봄에는 꽃마리의 매력에 빠져보세요.
결코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꽃마리]
부슬거리는 봄비속에서 진행된 나들이지만
나름 행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반갑게 나와서 인사를 건네준 친구들이나
아직은 수줍어 숲에 숨어버린 친구들이나
내게는 소중한 친구들입니다.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먼곳에서 찾아온 소꿉동무를 만나는 일처럼 아름다운 경험입니다.
그들이 저 산과 들에 사는한 말입니다.
이 글을 쓰다가 문득 말기암으로
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벗이 생각나 전화를 걸었습니다.
죽음이라는 말을 서로 하지 못하는 통화 내내 울컥울컥 했습니다.
죽었던 땅에서 들꽃이 피어나듯
그대도 다시 일어서시오.
차마 하지 못한 말입니다.
-곽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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