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강에서
-곽요한
강은 아주 낯선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버리지 못해 포승(捕繩) 된 계절의 잔해와
문명에 침노 당한 자갈밭에서
피멍 든 몸으로 그렁거렸다
사랑을 꿈꾸고
시를 엮어 내고
자유를 갈구하던 갈대숲이
포로처럼 몸을 눕히던 날
소문도 없이 병든 강의 잔기침을 따라
강 언덕 구비구비 *니힐리즘의 무늬들이 번져갔다
아무런 저항도 없이
자랑스레 높았던 이름마저 갈색의 혼돈 속에 묻히고
새들도 더 이상 날개를 펼치지 않는 겨울 강변에서
한 사내가 참회록을 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