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편지

들꽃을 만날 때는 차 한 잔의 여유로움으로

곽요한 2012. 4. 5. 01:24

 꽃샘추위가 있다하나 봄은 봄이다.

산마다 들마다 봄꽃들이 다투어 일어서고

사람들이 들꽃을 찾아 나선다.

나의 들꽃나들이도 일찍 시작되었지만

미리 계획된 나들이는 사실 적은 편이다.

지나고나서 점검해 보면

절반 정도는 무계획 나들이다.

 

[노루귀]

 

내가 그렇게 무계획 나들이를 하게 된 것은

초창기에는 어느 곳을 가야 어떤 들꽃을 만날지 모르기 때문이었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어디를 가든 들꽃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꿩의바람꽃]

 

사실, 이 땅의 들꽃들은

흙과 물과 햇빛만 있으면 어디서든 꽃을 피워낸다.

그러므로 4월이 되면 어디로 갈까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저 발길 닿는대로 움직이면

거기 들꽃이 있다.

 

그리고 무계획의 장점답게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꽃 한 송이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해서

어떤 때는 해가 저무는 줄도 모르게 된다.

들꽃을 만나는데 급할 일이 무엇인가?

어느 정도의 여유로움을 갖고 만나지 않으면

남는 것은 사진 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사진이 아니다.

들꽃의 감성 따라잡기 또는,

들꽃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아니, 들꽃을 피워내는 자연과 동화되며 생명의 의미를 찾는 일이다.

너무 거창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흰털괭이눈(흰괭이눈)]

 

그런데 동호인들과 같이 들꽃을 만나러 나가면

어쩐지 급하게 서두는 모습을 보게 된다.

바쁜 시간을 쪼개 나왔으니 그 심정 헤아리지 못하는 바 아니지만

차 한 잔 나눌 정도의 여유도 없으니

어찌 들꽃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들에게 들꽃은 사진을 찍기 위한 소도구에 불과하다.

아래 사진을 보라!

동강할미꽃을 만나러 가서 본 광경인데

어딘지 어색하지 않은가?

유감스럽게도 어떤 사람이 사진을 찍기 위해

저 곳에 옮겨 심은 것이다.

동강할미꽃은 대부분 가파른 바위벼랑을 의지하고 자라기에

촬영하기가 꽤 어렵다.

그래서 이렇게 평평한 곳에 심어 놓고 촬영한 것이다.

아마도 그는 동강의 멋진 풍광을 배경으로 담았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어찌 들꽃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며

자연과 동화되는 경험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일도 가끔 일어나지만

가장 흔한 일은 들꽃 주변의 낙엽을 온통 긁어내고 촬영한 다음

그대로 방치해 버리는 일이다.

꽃샘 추위가 심한 봄철에는 낙엽이 들꽃에게 보온작용을 하며

건조함을 막아주는 구실도 한다.

그런 낙엽을 긁어내 버리면

들꽃에게는 가장 힘든 환경이 돼 버리는 것이다.

설사 낙엽이 보기 싫어 긁어내고 촬영했다면

촬영 후에 다시 덮어주어야 한다.

 

[노루귀]

이런 일들은 약과에 불과할지 모르겠다.

어떤 이들은 옮겨 심기도 바쁜지

줄기를 잘라 배경 좋은 곳에 꽂아 놓고 찍기도 한다.

그런 일을 목격할 때마다 마음 속으로 외친다.

제발, 사진 공부하기 전에 자연을 사랑하는 것부터 배우라고...

 

만일, 여유를 갖고 들꽃을 만나면

그런 일이 줄어들 것은 자명한 일이다.

바쁜 일정 탓에,

멋진 배경의 사진을 얻기 위한 조급함에

부끄러운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무계획적인 들꽃나들이를 즐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연이 닿으면 닿는대로,

아주 작은 들꽃 하나를 만나도 만족할 수 있는 여유로움으로 나서고자 한다.

아무 것도 모르고 나선 길에서 만나는 뜻밖의 친구들,

그 만남의 희열을 맛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차 한 잔 나눌 수 있는 여유로움만 있어도

들꽃나들이는 훨씬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솔빛에서 곽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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