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은 탓일까요?
바람 끝 서늘해지고
마음 한 켠이 아릿해 집니다.
해마다 찾아오는 만성질환, 가을앓이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나는 나그네가 됩니다.
[용담]
정처없이 떠나는 길에
들꽃이라도 없었다면 얼마나 쓸쓸했을까요?
들꽃이 벗이 되고
나는 점점 그 세계로 빠져갑니다.
[꽃향유 & 작은멋쟁이나비]
어디 들꽃 뿐이겠습니까?
꽃잎에 머무는 바람과
그 위에 내려 앉는 햇살과
짙은 산그림자까지도 나의 벗이 됩니다.
[산국]
아스라히 산굽이 돌아 떠나갔던
작은 소녀를 떠올리기도 하고
삶의 순간마다 인연이 되었던 이들을 추억해 냅니다.
[흰꽃향유]
내가 오늘 편지를 쓰는 것도
그 추억들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죽는 날까지 추억 속에서 살아가는
나 또한 범속한 인간이니까요.
[물매화]
그러나 때로는 인연들을 소홀히 합니다.
내가 만났던 이들과
모든 들꽃과 바람이며 햇살이
얼마나 소중한 인연이었는지를 잊고 삽니다.
[당잔대]
가을앓이는 그런 나에게
인연들이 다시 생각나게 하는
좋은 질병입니다.
그래서 깊어가는 이 가을에
더 깊이깊이 계절을 앓아 볼 생각입니다.
-솔빛에서 곽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