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편지

가을앓이

곽요한 2012. 10. 14. 10:55

 가을이 깊은 탓일까요?

바람 끝 서늘해지고

마음 한 켠이 아릿해 집니다.

해마다 찾아오는 만성질환, 가을앓이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나는 나그네가 됩니다.

 

[용담]

 

정처없이 떠나는 길에

들꽃이라도 없었다면 얼마나 쓸쓸했을까요?

들꽃이 벗이 되고

나는 점점 그 세계로 빠져갑니다.

 

[꽃향유 & 작은멋쟁이나비]

 

어디 들꽃 뿐이겠습니까?

꽃잎에 머무는 바람과

그 위에 내려 앉는 햇살과

짙은 산그림자까지도 나의 벗이 됩니다.

 

[산국]

 

아스라히 산굽이 돌아 떠나갔던

작은 소녀를 떠올리기도 하고

삶의 순간마다 인연이 되었던 이들을 추억해 냅니다.

 

[흰꽃향유]

 

내가 오늘 편지를 쓰는 것도

그 추억들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죽는 날까지 추억 속에서 살아가는

나 또한 범속한 인간이니까요.

 

[물매화]

 

그러나 때로는 인연들을 소홀히 합니다.

내가 만났던 이들과

모든 들꽃과 바람이며 햇살이

얼마나 소중한 인연이었는지를 잊고 삽니다.

 

[당잔대]

가을앓이는 그런 나에게

인연들이 다시 생각나게 하는

좋은 질병입니다.

그래서 깊어가는 이 가을에

더 깊이깊이 계절을 앓아 볼 생각입니다.

 

 

-솔빛에서 곽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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