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편지

왕오색나비 이야기

곽요한 2013. 7. 25. 13:26

 왕오색씨는 참나무 숲에 삽니다.

그가 살고 있는 숲에는 참나무가 유달리 많았고

맛있는 수액을 제공해 주었으므로

많은 나비들이 사람들의 등쌀에 못 이겨 이주를 했지만

왕오색씨는 이곳을 떠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왕오색씨의 아침식사시간입니다.

그가 주로 식사하는 참나무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등산로에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그의 절친인 풍뎅이씨도 살고 있습니다.

먼 나라에서 이주해 온 풍뎅이씨지만

왕오색씨와는 금세 친해졌고

지금은 식사도 같이 하는 친구가 되었지요.

 

이웃마을에 사는 또 다른 왕오색씨가

식사시간에 찾아왔습니다.

 

 

왕오색씨와는 그다지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이웃마을에서 왔으니 수액 먹는 걸 눈감아 줍니다.

 

허락한다는 말은 없었지만

이웃마을 왕오색씨가 눈치를 보며

식사 자리에 본격적으로 끼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좀 더 먼 곳에 사는 청띠신선씨가 나타났습니다.

왕오색씨는 그가 달갑지 않았습니다.

이웃마을 왕오색씨까지는 봐 줄 수 있었지만

청띠신선씨까지 끼어들면 자리가 너무 복잡해 질 것이고

그가 욕심이 많다는 소문을 듣기도 했기에

끼워줄 생각이 결코 없었습니다.

자리가 없는 걸 알면서도

청띠신선씨가 주변을 빙빙돌며 끼어들려 했습니다.

 

왕오색씨는 안 되겠다 싶어 그의 장기인

날개펼쳐휘젓기를 했습니다.

나비 세계에서는 꽤 유명한 필살기에

청띠신선씨나 이웃마을 왕오색씨 모두

식사자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지요.

그들이 물러나자 풍뎅이씨의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왕오색씨는 풍뎅이씨와의 관계를 생각해서

그가 수액 먹는 것을 눈감아 주었습니다.

 

 

왕오색씨와 두 풍뎅이씨의 식사가 이어지는 동안

이웃마을 왕오색씨는 여전히 주변을 맴돌며

끼어들기를 해 보려 합니다.

 

 

하지만, 왕오색씨의 날개펼쳐휘젓기에 당할 수는 없었으므로

다른 참나무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바탕 소란이 지나고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그런 소란에도 열심히 수액만 먹는 풍뎅이씨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왕오색씨는 옆 자리로 이동했습니다.

 

방해꾼들만 없으면 왕오색씨는

오래오래 이 참나무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풍뎅이씨와 함께요.

 

 

-솔빛에서 곽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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